뭐 예상했던 대로 오바마가 엄청난 돌풍을 몰고 오면서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걸 보면서 저는 '부럽다' 라는 생각부터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변화를 바랬고, 8년만에 변화를 이루어 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바마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취임이후에 지켜봐야 하겠지만요. 정치인이라는게 워낙 말바꾸기에 능한 사람들인지라...
부시의 실정이 한몫한것도 있을겁니다. 그것에 대해서 공화당의 지지도가 떨어진 것이겠지요.
물론, 그들도 '부시'라는 엄청난 실패작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변화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변화는 4년뒤에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서울 교육감 선거에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의 변화를 일으킨것을 보았습니다.
흔히하는 우스갯 소리로 '이명박은 우리에게 민주주의 의식을 심어주러 온
요정이다' 라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가 엄청난 삽질을 하고 자신의 표의 중요성을
알면 민주주의 의식이 함양되지 않겠느냐 하는 이야기겠지요.
이미 그러한 변화는
인터넷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바람이 이제 오프라인으로 넘어가는 일만 남았을 뿐입니다.
오
바마의 당선을 축하합니다. 아니 미국에서 변화를 바랐던 미국인들 모두 축하합니다.
오바마가 우리나라에게는 해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쨋튼 위에서 말했듯이 변화를 바랬고 그 변화를
쟁취한 모든 미국인들에게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사족1 :
영어가 젬병이라 영어로는 못쓰겠네요 :P
태그 : 댓글알바
우리나라 문화상품들이 국내시장에서 죽을 쑤는 이유는 뭘까?
저작권 의식의 부재?
지적성장의 미숙?
컨텐츠 개발자들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삽질?
난 다 아니라고본다.
이 모든건 이 한마디로 압축 될 수 있다고 본다.
아 씨바 먹고 살기도 빠듯해 죽겠는데 문화고 나발이고(하략)
라고.
모든 문제는 여기에 있다고 온다. 우린 모두 서로가 힘들고, 힘들게 살아왔다. 구한말. 일제시대때는 나라를 뺏겨서 나라를 되찾겠다는 것과, 일본의 압제에 여유가 없었고,
해 방 후에는 나라는 개그지였고. 그러고 좀 혼란한 상황에서 전쟁 터지고, 분단되고, 모든것이 파괴된 땅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하고. 6~70년대는 '잘살아보세' 라는 일념 하에 모두 경제 성장에 떠밀렸고(그게 자의든 타의든 간에) 이제좀 사람답게 살자고 민주화 요구하고, 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이제 우리도 우왕ㅋ굳ㅋ 하면서 좀 한숨을 쉬려니까.
IMF 터지고.
IMF 사태가 종결 되고, 카드대란, 신불자 문제. 부동산 폭등. 지역갈등(강남)이 나타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자들은 언제 무슨일이 모르니까 더 가지기 위해 여념이 없고, 없는자는 먹고살기도 못하겠으니까 더 돈을 벌려고 악착같이 살고...
문 화생활이란 생활의 여유가 생겼을 때 사람이 어느정도 먹고 살만하고 좀 여유가 있을 때, 무엇인가 부족한것을 채우고, 즐기기위해서 하는 것인데,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문화생활이고 자시고를 즐길 여유를 가질만할 때가 우리나라의 근대화 역사를 뒤져봤을 때 어디있었는가.
그러다 보니까 (먹고살기도 힘든데)그건 왜 사? 좀더 싸게 다운받아보지. 라는 행동이 정착된것이 아닐까 싶다. 상황이 조금 더 여유로웠으면 기꺼이 문화상품에 투자를 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정당하게 즐겼을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지금 살아있는 시장에서도 반은 '투기심리'가 작용해 있는것이 사실이다. 특히 '한정판'
한 정판은 매진이 되고 기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희소가치가 높아져서 프리미엄이 점점 붙게된다. 이걸 노리고 한정판을 여러개 구입하는 사람도 있다. 겉으로보기에는 아직 시장이 살아있구나. 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은 기형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진짜 그 한정판이맘에 들어서 구매하고 그걸 가지고 즐기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을 투기의 수단으로 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까 앞에서 누누히 이야기 했지만 저작권 의식의 부재와 지적 성장의 미숙의 원인은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람들에게 여유가 생길지 모르겠다. 특히 현정권이 정권인지라,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여유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사회상황인데 아무리 저작권의식의 부재와 지적성장의 미숙함, 혹은 컨텐츠 판매자의 실책을 질책해봤자 답이 나올까?
결론 이 -야이 쥐색꺄!- 로 흘러갈 수도 있는 이상한 글이긴 한데, 사람들의 여유가 지금처럼 없다면, 아무리 저작권을 부르짖어봐도 정품보다는 복돌을 쓰는 사람은 줄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게 쓸데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저작권을 부르짖으면 다 돌아서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현상유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이 모든 상황의 최선의 타개책은 우리 모두가 마음의 여유를 갖는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문화상품에 지갑을 열게 되겠지.
저작권 의식의 부재?
지적성장의 미숙?
컨텐츠 개발자들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삽질?
난 다 아니라고본다.
이 모든건 이 한마디로 압축 될 수 있다고 본다.
아 씨바 먹고 살기도 빠듯해 죽겠는데 문화고 나발이고(하략)
라고.
모든 문제는 여기에 있다고 온다. 우린 모두 서로가 힘들고, 힘들게 살아왔다. 구한말. 일제시대때는 나라를 뺏겨서 나라를 되찾겠다는 것과, 일본의 압제에 여유가 없었고,
해 방 후에는 나라는 개그지였고. 그러고 좀 혼란한 상황에서 전쟁 터지고, 분단되고, 모든것이 파괴된 땅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하고. 6~70년대는 '잘살아보세' 라는 일념 하에 모두 경제 성장에 떠밀렸고(그게 자의든 타의든 간에) 이제좀 사람답게 살자고 민주화 요구하고, 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이제 우리도 우왕ㅋ굳ㅋ 하면서 좀 한숨을 쉬려니까.
IMF 터지고.
IMF 사태가 종결 되고, 카드대란, 신불자 문제. 부동산 폭등. 지역갈등(강남)이 나타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자들은 언제 무슨일이 모르니까 더 가지기 위해 여념이 없고, 없는자는 먹고살기도 못하겠으니까 더 돈을 벌려고 악착같이 살고...
문 화생활이란 생활의 여유가 생겼을 때 사람이 어느정도 먹고 살만하고 좀 여유가 있을 때, 무엇인가 부족한것을 채우고, 즐기기위해서 하는 것인데,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문화생활이고 자시고를 즐길 여유를 가질만할 때가 우리나라의 근대화 역사를 뒤져봤을 때 어디있었는가.
그러다 보니까 (먹고살기도 힘든데)그건 왜 사? 좀더 싸게 다운받아보지. 라는 행동이 정착된것이 아닐까 싶다. 상황이 조금 더 여유로웠으면 기꺼이 문화상품에 투자를 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정당하게 즐겼을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지금 살아있는 시장에서도 반은 '투기심리'가 작용해 있는것이 사실이다. 특히 '한정판'
한 정판은 매진이 되고 기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희소가치가 높아져서 프리미엄이 점점 붙게된다. 이걸 노리고 한정판을 여러개 구입하는 사람도 있다. 겉으로보기에는 아직 시장이 살아있구나. 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은 기형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진짜 그 한정판이맘에 들어서 구매하고 그걸 가지고 즐기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을 투기의 수단으로 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까 앞에서 누누히 이야기 했지만 저작권 의식의 부재와 지적 성장의 미숙의 원인은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람들에게 여유가 생길지 모르겠다. 특히 현정권이 정권인지라,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여유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사회상황인데 아무리 저작권의식의 부재와 지적성장의 미숙함, 혹은 컨텐츠 판매자의 실책을 질책해봤자 답이 나올까?
결론 이 -야이 쥐색꺄!- 로 흘러갈 수도 있는 이상한 글이긴 한데, 사람들의 여유가 지금처럼 없다면, 아무리 저작권을 부르짖어봐도 정품보다는 복돌을 쓰는 사람은 줄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게 쓸데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저작권을 부르짖으면 다 돌아서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현상유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이 모든 상황의 최선의 타개책은 우리 모두가 마음의 여유를 갖는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문화상품에 지갑을 열게 되겠지.
네타에 대해선 자비심이 없으니 주의하십시오
명품 애니 스카이 크롤러.
다른 분들 말마따나 이 애니는 지극히 명품 애니이다. 작화뿐만 아니라 소리까지 섬세하다. 작화는 미묘한 움직임까지 재현을 하고 있고, 기존 애니메이션과는 다르게, 화면에 나오는 소리만 나는 것이 아니라, 화면에 나타나지 않은 것을 소리로서 전달을 한다.
예를 들어 화면은 벽난로를 잡고있는데, 오른쪽에 문이 있어서(화면에는 안보이지만) 그곳으로 누군가가 나가거나 들어오는 듯한 문소리를 낸다거나.(실제도 소리도 오른쪽에서만 나고) 후반부 신에서, 총을 쏘고 탄피 소리가 뒤쪽에서만 난다거나. 이러한 현장감을 잘 살려두었다. 마치 현장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으로.
야외상영장이라는 장소에 대해 불만을 가진 이유는 실내에서 봤을 경우에는 ‘아. 이게 영화에서 나는 소리구나’ 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받아들이는데, 야외상영장에서는, 옆이나 뒤에서 미묘하게 소리가 나는데. ‘이게 영화소리인가 아니면 잡소리인가.’ 라는 생각이 날 수 밖에 없다.(실제로 부산극장에서 재감상을 했을 때, ‘어? 이소리 영화 소리였구나.’ 싶었던 장면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야외상영장에서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가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그것 때문이다.(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위의 소리에 대한 것도 있지만, 이 ‘스카이 크롤러’ 는 기존의 애니메이션 적인 느낌이 아닌 실사 영화의 느낌이 많이 난다. 오시이 감독이 실사를 주로 써온 각본가에게 “실사 쓰듯이 써도 괜찮음” 이라고 주문했을 정도고, 작화나 연출면에 있어서도 실사와 같아지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위에서 말한 사운드도 그 중 하나이다.
좋게말하면 담론, 나쁘게 말하면 떡밥
짧게 한마디 하자면 이 애니에는 전쟁과 평화. 어린이와 어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져 있으며, 극중 곳곳에는 여러가지 해석을 남기는 떡밥이 존재 한다. 이 떡밥을 다 찾아서 이야기 하기에는 기억하고있는 떡밥도 부족하며 능력도 부족하니 이렇게 사족으로 끝내두도록 하겠다.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극의 마지막에 유이치가 출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매일 지나는 길이라도 다른곳을 지나갈 수 있다.
매일 지나는 길이라도 경치는 매일 같은건 아니야
그것만으론 부족한걸까?
그것뿐이니까 부족한걸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 매일 반복 되더라도 매일 똑 같은 일상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 조그마하게 변하는 일상이라도 소중한 것 아닐까? 라는 것이 감독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스카이 크롤러의 외부 첫 공개도 요코하마 대학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하다고 느낀 점은 전투장면에서의 대화가 모두 ‘영어’ 라는 점이었다. 땅 위에서는 일본어를 쓰고, 비행 중에는 영어를 쓰고… 또한, 킬드런들이 아닌 외부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쓴다. 이것을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즉, 젊은이들과 기성세대들간의 세대 차이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왔고, 서로간에 말이 통하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그런 것을 전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다. 실제로 어른들이 자주 하는말 ‘애들이 무슨 소리 하는건지 도통 모르겠단말야.’ 처럼.
그런데 좀 그 영어 부분에서 이상한 번역(?)이 있었는데. 이건 일본어판 번역자막도 좀 이상했다는 듯. 중반부에 쿠사나기가 영어로 [Enough is enough!] 를 외친다. 그 장면에서 한국어 자막으로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정말 못봐주겠네]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일본판에선[かわいそうなんかじゃない!] 로 번역이 되어있다고 한다. 한국어 자막도 일판 자막을 따른게 맞다면 [불쌍한게 아니야!] 정도였을것 같은데… 내 기억을 탓할 뿐.
어쨌건간에 중요한건 이게 아니라 유이치의 마지막 대사이다. 마지막 비행에서 티쳐를 발견하고 모두 돌아가는데 유이치는 혼자 빠져나오면서 [이건 내 싸움이다] 라고 한다. 그리고 그 후 이어지는 대사의 자막은 [티쳐를 격추하겠다!] 라고 했는데 실제로 들리는 대사는 [I kill my father] 였다.
혹자는 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발현’ 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오시이 감독은 이걸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를 뛰어넘는 것이 젊은이의 역할 아닐까?’ 라고.
설 령, 영원히 살아간다고 해도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 나뭇잎의 소리나 바람의 내음, 곁에 있는 누군가의 온기. 미묘하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것을 믿으며 살아간다. 그렇게 바라보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소리 높여 외치는 공허한 정의나 틀에 박힌 격려 따위가 아닌 조용하지만 확실한 진실된 희망을 전하고 싶다.
-오시이 감독의 말이다.
명품 애니 스카이 크롤러.
다른 분들 말마따나 이 애니는 지극히 명품 애니이다. 작화뿐만 아니라 소리까지 섬세하다. 작화는 미묘한 움직임까지 재현을 하고 있고, 기존 애니메이션과는 다르게, 화면에 나오는 소리만 나는 것이 아니라, 화면에 나타나지 않은 것을 소리로서 전달을 한다.
예를 들어 화면은 벽난로를 잡고있는데, 오른쪽에 문이 있어서(화면에는 안보이지만) 그곳으로 누군가가 나가거나 들어오는 듯한 문소리를 낸다거나.(실제도 소리도 오른쪽에서만 나고) 후반부 신에서, 총을 쏘고 탄피 소리가 뒤쪽에서만 난다거나. 이러한 현장감을 잘 살려두었다. 마치 현장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으로.
야외상영장이라는 장소에 대해 불만을 가진 이유는 실내에서 봤을 경우에는 ‘아. 이게 영화에서 나는 소리구나’ 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받아들이는데, 야외상영장에서는, 옆이나 뒤에서 미묘하게 소리가 나는데. ‘이게 영화소리인가 아니면 잡소리인가.’ 라는 생각이 날 수 밖에 없다.(실제로 부산극장에서 재감상을 했을 때, ‘어? 이소리 영화 소리였구나.’ 싶었던 장면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야외상영장에서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가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그것 때문이다.(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위의 소리에 대한 것도 있지만, 이 ‘스카이 크롤러’ 는 기존의 애니메이션 적인 느낌이 아닌 실사 영화의 느낌이 많이 난다. 오시이 감독이 실사를 주로 써온 각본가에게 “실사 쓰듯이 써도 괜찮음” 이라고 주문했을 정도고, 작화나 연출면에 있어서도 실사와 같아지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위에서 말한 사운드도 그 중 하나이다.
좋게말하면 담론, 나쁘게 말하면 떡밥
짧게 한마디 하자면 이 애니에는 전쟁과 평화. 어린이와 어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져 있으며, 극중 곳곳에는 여러가지 해석을 남기는 떡밥이 존재 한다. 이 떡밥을 다 찾아서 이야기 하기에는 기억하고있는 떡밥도 부족하며 능력도 부족하니 이렇게 사족으로 끝내두도록 하겠다.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극의 마지막에 유이치가 출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매일 지나는 길이라도 다른곳을 지나갈 수 있다.
매일 지나는 길이라도 경치는 매일 같은건 아니야
그것만으론 부족한걸까?
그것뿐이니까 부족한걸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 매일 반복 되더라도 매일 똑 같은 일상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 조그마하게 변하는 일상이라도 소중한 것 아닐까? 라는 것이 감독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스카이 크롤러의 외부 첫 공개도 요코하마 대학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하다고 느낀 점은 전투장면에서의 대화가 모두 ‘영어’ 라는 점이었다. 땅 위에서는 일본어를 쓰고, 비행 중에는 영어를 쓰고… 또한, 킬드런들이 아닌 외부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쓴다. 이것을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즉, 젊은이들과 기성세대들간의 세대 차이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왔고, 서로간에 말이 통하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그런 것을 전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다. 실제로 어른들이 자주 하는말 ‘애들이 무슨 소리 하는건지 도통 모르겠단말야.’ 처럼.
그런데 좀 그 영어 부분에서 이상한 번역(?)이 있었는데. 이건 일본어판 번역자막도 좀 이상했다는 듯. 중반부에 쿠사나기가 영어로 [Enough is enough!] 를 외친다. 그 장면에서 한국어 자막으로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정말 못봐주겠네]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일본판에선[かわいそうなんかじゃない!] 로 번역이 되어있다고 한다. 한국어 자막도 일판 자막을 따른게 맞다면 [불쌍한게 아니야!] 정도였을것 같은데… 내 기억을 탓할 뿐.
어쨌건간에 중요한건 이게 아니라 유이치의 마지막 대사이다. 마지막 비행에서 티쳐를 발견하고 모두 돌아가는데 유이치는 혼자 빠져나오면서 [이건 내 싸움이다] 라고 한다. 그리고 그 후 이어지는 대사의 자막은 [티쳐를 격추하겠다!] 라고 했는데 실제로 들리는 대사는 [I kill my father] 였다.
혹자는 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발현’ 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오시이 감독은 이걸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를 뛰어넘는 것이 젊은이의 역할 아닐까?’ 라고.
설 령, 영원히 살아간다고 해도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 나뭇잎의 소리나 바람의 내음, 곁에 있는 누군가의 온기. 미묘하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것을 믿으며 살아간다. 그렇게 바라보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소리 높여 외치는 공허한 정의나 틀에 박힌 격려 따위가 아닌 조용하지만 확실한 진실된 희망을 전하고 싶다.
-오시이 감독의 말이다.







